1948년. 정보는 새롭게 태어났다. (인간이 정보를 이용한지) 정보와 인간이 만난지 7만년이 흐른 다음이었다.
섀넌은 ‘통신에 관한 수학 이론(A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이란 논문을 통해서 디지털 시대라는 거대한 신세계를 열어젖혔다. 1948년 벨 연구소를 통해 발표된 이 논문에서 그는 정보의 전달을 다루고 있다. 그는 잡음(노이즈)이 있는 환경에서도 디지털 정보가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쉽게 말해 다양한 전파가 뒤섞여 있는 빌딩 숲에서도 휴대전화를 통해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렇게 말을 해도 섀넌이란 과학자가 낯설지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상징하는 비트(bit)라는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거다.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최소한의 단위인 비트를 제안한 이가 바로 섀넌이다. 60여년 전 그가 만들어 낸 비트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 버금가는 대중적인 용어가 됐다.
섀넌은 과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였다. 그가 걸어온 길은 창의성을 가진 과학자 혹은 수학자에 가까웠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로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모형쥐를 발명했고 저글링 장난감을 개발하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를 열어 젖힌 엔지니어’라는 평가를 받는 섀넌은 옛서사시의 주인공처럼 갑자기 등장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엔지니어였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과학자는 아니었다. 과묵했고 진지했으며 혼자 연구하는 걸 즐겼다. 그가 활동했던 당시 디지털은 공학 교과서에서 논의되던 첨단 학문이었다. 대중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점이 뭔지 몰랐다. 디지털이란 학문은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우리처럼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다.
정보를 새롭게 깨운 건 클로드 섀넌이었다. 어쩌면 정보가 다시 태어났다고 적는 게 보다 좀더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일단 겉모습이 변했다. 정보는 그해 디지털이란 새로운 옷을 꺼내입었다. 옷장 속 깊숙히 숨겨져 있던 디지털이라는 옷을 비로소 꺼내 입게 된 것이다. 옷장 속에 들어 있었으나 아날로그란 옷에 가려져 있던 그것이다. 디지털이라 불리는 옷은 검은색과 흰색, 두 가지 색깔로 지어진 옷이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0과 1은 디지털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다. ‘예’ 혹은 ‘아니오’라 말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디지털이다.
정보의 역사를 통틀어 1948년은 중요한 변곡점이다. 포물선이 초점을 지나는 순간 모든 운명이 뒤집어지듯 정보는 디지털을 만나면서 흐름이 결정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아르키메데스의 욕조나 뉴튼의 사과가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상대성이론을 내놓은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처럼 극적이라 생각되는 에피소드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처럼 너무나 조용한 혁명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정보이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중력이나 부피는 우리에게 멀리 있지만 휴대전화는 한 순간도 놓을 수 없는 것이 됐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는 휴대전화에 매어있다. 그 만큼 인류가 정보통신에 기대어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국 출신 엔지니어 클로드 엘우드 섀넌(Claude Elwood Shannon, 1916~2001)이 있다. 디지털이란 새로운 옷을 재단한 건 그였다. 섀넌은 “어느 한 순간에 영감이 떠올라 정보이론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가 사용한 건 수학이라는 도구였다. 섀넌은 확실한 도구를 통해 맛도 색도 냄새도 없는 정보가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CD플레이어와 휴대전화 등 디지털 무선통신이 생겨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그가 만들어낸 정보이론은 정보를 정의하는 새로운 도구가 됐다. 인류는 그러한 도구를 통해 정보를 다룰 수 있게 됐다. 맛도 색도 냄새도 없는 정보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인간에 의해 개발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