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설명서

대형 강의실은 무덥고 습했다. 200여 명이 한꺼번에 강의를 듣는 그 풍경은 공과대학에선 흔한 모습이었다. 전공필수로 정해진 통신 이론과 같은 수업은 항상 일정한 단차를 두고 책상을 쌓아 올린 대형 강의실로 배정됐다. 졸업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다 보니 복학생에 재수강생이 수업마다 몰렸다. 통신 이론은 쉽게 말해 각종 무선 통신 수단의 작동 원리를 배우는 수업이다. FM과 AM 라디오가 어떻게 목소리와 음악을 전달하는지에서 시작해 스마트폰이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을 익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파를 이용해 먼 곳까지 음악을 전송하는 원리는 흥미로운 주제였지만 복학생이 많은 탓에 A학점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들은 눈빛만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강의실에서 에어컨은 힘을 쓰지 못했다. 에어컨 냉기는 백 명이 넘는 학생이 내뿜는 체온을 이겨내지 힘겨워했다. 그럼에도 분필을 들고 각종 이론을 설명하는 교수님은 열정에 넘쳤다.

칠판에는 각종 수식이 난무했지만 내가 주목한 건 통신 이론을 쌓아 올린 엔지니어였다.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1831~1879)은 1864년 전파의 존재를 주장했다. 1888년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1857~1894)는 전파를 실힘적으로 증명했다. 헤르츠를 주파수의 단위로 사용하는 이유다. 그들이 있었기에 스마트폰으로 압축되는 디지털 혁명이 가능했다. 공학은 한 사람의 천재가 이끌어가는 학문이 아니다. 수많은 엔지니어가 작은 돌을 쌓아 올려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만든다. 그 과정은 공과대학의 대형 강의실과 닮았다. 콘크리트를 일정하게 쌓아 올려 만든 계단식 책상처럼 일정하게 쌓인 기술은 혁신을 거듭하고 마침내 세상을 바꾼다. 엔지니어는 자신의 시대에서 만들 수 있는 최신의 기술을 쌓아 올리고 이를 통해 공학은 발전을 거듭한다.

컴퓨터의 등장과 디지털 시대의 발전 과정도 비슷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손가락 터치로 미국 시장에서 주식을 사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 사이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것이다. 물론 이 과정도 계단식이다. 스마트폰과 디지털을 향해 엔지니어가 조금씩 쌓아 올린 기술이 있었기에 현재가 있는 것이다.

덥고 습했던 대형 강의실의 계단을 떠올리게 된 건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디지털 산업을 취재하면서 그 시작점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호기심 넘치던 공대생 시절로 돌아갔다. 디지털 시대의 시작점과 발전 과정 그리고 이를 이끈 엔지니어의 활약은 학부 4년 동안 모두 배운 것들이었다. 물론 수식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공대 수업의 특성상 기술의 흐름과 엔지니어의 활약상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4년이란 짧은 시간에 한 세기에 걸쳐 이뤄진 기술 발전을 압축해서 익혀야 하는 공대생에겐 이를 알아채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엔 지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게 있다. 내겐 디지털이란 인류의 발명품이 그랬다. 공대 4년을 되돌아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이를 주도한 엔지니어의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그 시작은 수식이 아닌 짧은 질문이었다. 짧지만 날카로우면서 근본을 파헤치는 질문. 그 질문에 인간의 삶을 바꾼 디지털의 시작이 있었다. 복잡한 수식을 이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었다. 디지털 혁명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 이제는 인공지능이 삶까지 침투했다. 인공지능은 즐겨보는 영상에 맞춰 다음에 볼 것들을 추천해주고 에어컨 운전도 맞춤형으로 조절한다. 인공지능은 디지털 혁명의 끝이 아니다.

이 글은 디지털 시대를 가능케 한 엔지니어들이 남긴 문서들을 되짚으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살펴본다. 그곳엔 복잡한 수식보다 중요한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공과대학 수업에선 배우기 힘든 하지만 결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은 것들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진행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