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넌은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직후부터 암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벨 연구소에서 진행된 연구 중 가장 유명한 건 ‘X 시스템(System X)’이란 이름의 워싱턴-런던 핫라인이었다.
당연하게도 독일이 도청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벨 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목소리를 변형시켰다. 독일에서 도청하지 못하도록 하는게 목표였다. 일부가 적에게 뺏기 더라도 복구하기 힘든 시스템을 만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당시 사용되는 암호는 전신에 적이 유추하기 힘든 특정한 무작위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하나의 키(key)로 작동했고 그 키가 완벽하게 전달되면 메시지 역시 완벽한 것이라고 판단됐다.
언젠가 처칠과 루즈벨트의 목소리가 핫라인을 타고 전달될 예정이었다. 엔지니어 한 명이 새로운 암호 기술을 개발하면 다른 연구자가 암호화된 메시지를 해독하는 일이 반복됐다. 엔지니어들은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신호를 무작위로 메시지에 섞어 보내는 기술을 발명했다.
2차 세계 대전이 지속되는 동안 X시스템은 미국과 영국의 전쟁 전략을 맡고 있는 담당 부서 사이에서 정보를 교환하는 요긴한 장치로 사용됐다. 샘플링(sampling)과 양자화(quantization)라는 새로운 기술이 떠올랐다. 목소리는 다양한 높이와 크기로 나눠졌다. X시스템은 첫 디지털 통신 시스템이었다. 아날로그 신호를 전달하는 전화와 달리 X시스템은 몇 개의 숫자로 이뤄진 디지털을 통해 정보를 전달했다.
X 시스템 개발은 비밀리에 이뤄졌기 때문에 섀넌도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시스템 개발과 관련된 학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벨 연구소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전쟁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나무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자세한 기술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지만 그 기술들이 결합돼 만드는 전체적인 형태에 대해선 파악하지 못했다. 섀넌은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다. 다른 과학자들과의 교류 역시 제한적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었다.
1943년 1월 앨런 튜링(Alan Turing)이 뉴욕에 있는 벨 연구소를 방문했다. 목소리를 암호화하는 방법에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미국을 찾았다. 그는 2달간 머물며 섀넌과 가끔 대화를 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식사를 즐기며 만났던 그들은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튜닝이 연구하고 있던 이니그마(Enigma)에 대해서나 섀넌이 진행하던 벨 연구소의 일에 대해서는 대화 주제에 오르지 못했다. 카페에서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컴퓨터나 인간의 뇌를 자극하는 기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눴다. 이와 함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기계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갔다. 튜링은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그가 만든 반(ban)이라는 용어는 섀넌이 정보의 양으로 정의한 비트(bit)와 유사한 개념이다.
1912년 6월 23일 런던에서 태어난 튜링은 어려서부터 수학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15살 때는 수학적 재능이 빼어난 ‘크리스토퍼 모컴’이라는 친구와 친하게 지냈는데, 둘은 힘을 합쳐 엄청나게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2년 뒤 모컴이 결핵으로 숨지자 튜링은 깊이 낙담했고, 이때부터 필생의 과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인간의 지능을 기계에 넣어두는 방법을 고안하는 일이었다. 튜링은 18살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스 칼리지에 입학해서 수학을 공부했는데, 수치해석을 비롯해서 확률론과 통계학에 특히 큰 관심을 보였다. 1935년부터는 대학원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2년 뒤 ‘계산 가능한 수와 결정문제의 응용에 관하여 (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라는 빼어난 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논문에서는 컴퓨터의 기본 구상이 최초로 선보였는데, ‘튜링기계’라 불리는 가상의 연산 기계가 그것이었다. 읽기와 쓰기, 제어 센터,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모든 계산 가능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 튜링의 핵심 개념이었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튜링의 보편만능기계를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튜링은 영국이 전쟁에 돌입한 지 하루 만인 1939년 9월 4일 런던 북쪽의 블레츨리 파크에 위치한 ‘정부암호학교’의 암호해독반 수학팀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섀넌은 튜링과 함께 일하면서 정보와 암호 기계 발명이 다양한 의견을 모았다. 둘의 만남은 정보이론의 탄생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