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지원이 끊길 위기에 처한 배비지는 분석 엔진을 만들기 위해 여려 곳을 돌며 자금을 모집했다. 머릿속 아이디어와 분석 엔진 설계도가 그가 가진 전부였다. 그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배비지는 영국 정부의 재정 지원이 끊기기 전인 1842년과 1843년 이탈리아 토리노 등을 찾아 분석 엔진 제작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호소했다. 그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설명회에 참석했던 젊은 엔지니어 루이지 메나브레아는 배비지의 설명을 받아 적고는 ‘찰스 배비지가 개발한 분석 엔진에 대한 스케치’를 발표했다. 배비지가 고안한 분석 엔진에 대한 간단한 이론적인 분석을 담고 있는  논문은 1842년 10월 학술 저널(Bibliothèque Universelle de Genève)에 실렸다. 영국보다 해외에서 분석 엔진이 알려진 것이다. 이에 러브레이스는 프랑스어로 작성된 분석 엔진 소개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러브레이스가 영어로 번역한 논문은 1843년 발표됐다. 그녀는 번역에 착수하면서 노트라고 적힌 해설서를 남겼는데 특이하게 해설이 본문보다 3배 이상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러브레이스는 배비지와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며 노트를 가다듬었다. 배비지는 “노트가 아니라 새롭게 글을 만들어서 정리를 해보는 게 어떠냐”라고 조언했으나 러브레이스는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트에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곳곳에 담겼다. 대표적인 건 종이 카드를 활용한 입력 장치다. 러브레이스는 구멍이 뚫린 종이 카드를 활용해 분석 엔진에 필요한 명령을 줄 수 있고 이를 재사용할 수도 있다고 봤다. 계산에 필요한 숫자를 기계에 입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대적인 컴퓨터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키보드를 통해 입력한 숫자는 모니터로 표출되고 엔터를 입력하면 컴퓨터가 계산을 끝난다. 계산기 프로그램에 있는 사칙연산은 언제든 꺼내서 재사용이 가능하다. 러브레이스의 종이 카드와 다르게 현대적인 컴퓨터는 하드디스크에 프로그램을 저장하고 있을 뿐이다. 러브레이스는 분석 엔진에 종이 카드를 사용하면 반복되는 작업을 간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드 반복의 힘은 필요한 카드의 수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이런 기계 계산은 수학적 연산이 반복되는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다. 계산할 데이터를 준비할 때 (반복 작업에 대한) 프로세스의 순서와 조합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반복적인 작업에서 인류가 해방되는 건 증기기관을 고안했던 이들의 일차적인 목표였다. 이를 통해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생산성은 높일 수 있다. 배비지가 꿈꿨던 계산이 가능한 기계적 장치도 이런 꿈에서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분석 엔진은 차이 기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차이 기계는 처음부터 설계된 계산만 가능했지만 분석 엔진은 그런 한계를 뛰어넘었다. 애당초 설계된 기능을 넘어서 작업자가 원하는 어떠한 계산도 수행할 수 있었다.

“차이 기계는 특정하고 매우 제한된 연산 세트를 구현한다. 차이 기계는 산술적으로 엄격하게 정의된 범위 내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분석 엔진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 분석 엔진은 우리의 지식과 함께 확장된다. 여기에 쓰이는 분석 법칙은 인간의 지식에 확장하는 곳까지 나아갈 수 있다.”

러브레이스는 인류의 지식이 확장하면 확장할수록 분석 엔진의 계산 능력도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는 너무나도 흔한 컴퓨터지만 당시에는 어렴풋한 컴퓨터 모델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녀의 선구안은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이후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간의 음성을 자동으로 인식해 명령을 수행하는 능력까지 컴퓨터는 탑재했다. 여기에는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음성 인식 기술을 인간이 개발했기 때문이다.

분석 엔진은 조작자가 원하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 지점이 차이 기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분석 엔진이 한 단계 진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분석 엔진은 계산을 진행하는 중단 단계에서 나오는 숫자도 저장할 수 있었다. 현대적인 컴퓨터는 메모리가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석 엔진은 서로 다른 기계 장치를 활용해 숫자를 저장하고 이를 활용했다. 러브레이스는 이를 “창고(storehouse)”라 불렀다.

“분석 엔진의 창고는 디스크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부분에 해당한다. 각각의 디스크에는 0에서 9까지 적힌 숫자가 가장자리에 새겨져 있다. 각 디스크는 서로 접촉하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디스크는 회전하면서 새겨진 숫자 표출한다.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디스크는 일의 자리를 그 위에 있는 디스크는 십의 자리를 표시한다. 그다음은 백의 자리를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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